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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들의 이야기 - 라윈 [어린 소년 -2-]

악감정 1 42 2

병이 박살나면서 귀를 찢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치솟는 불꽃은 조그마한 약병의 위력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화염을 뿌리며 폭발했다.

그녀의 황동 가면에 흙과 유리조각이 날아와 부딪쳤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세 없었다. 그녀는 연이어 물약을 집어던졌다. 글루번드가 폭발에 휩싸이지 않게 유의하면서.


쿵! 쿠웅!

물약이 폭발할 때마다 뼈와 시체가 튀어 올랐다. 윙윙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귓속을 맴돌고 나고 정신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으나, 무리가 터져나가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극성맞게 달려드는 언다잉 무리야말로 진정한 공포의 형상이었다.

지금껏 많은 언다잉 무리와 싸워온 툴란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언다잉에게는 치가 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무리. 그녀의 고향에 이토록 악랄한 약탈자들은 없었다. 툴란은 놈들의 우두머리를 보고 뿌득 이를 갈았다. 녀석은 추종자 무리 뒤에서 숨이 끊어지는 걸 기다리는 짐승처럼 자신을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건방진 모습의 귀신을 향해 그녀는 있는 힘껏 물약을 던졌다. 녀석에게 어떻게든 한방 먹이고 싶었다. 그러나 툴란의 바람과 달리 투명무색의 폭발액체는 놈에게 닿지 못했다. 힘차게 날아가던 유리병은 공중에서 회전하다 우뚝 멈춰 선 것이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놈의 주위를 배회하던 기이한 벌레 떼가 유리병을 휘어 감고 있었다. 형광의 기이한 빛을 품은 벌레 무리는 심지어 그 유리병을 공중에 띄운 채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추는 것 같았다. 눈앞에 물약에 흥미가 생겼는지 망자들의 우두머리는 고개를 기울이며 유리병을 속을 자세히 쳐다보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이 토악질을 하듯 모가지를 앞으로 내빼고 턱뼈를 꿀럭거리자 더 많은 벌레 떼가 놈의 몸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뭉친 벌레 떼가 곧장 툴란에게 쏘아졌다.


핑!

무수한 벌레 무리에 휘감긴 유리병은 바람 가르는 소릴 내며 툴란을 향해 날아왔다. 쏜살같이 날아오는 유리병을 툴란은 막아낼 수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 털썩 꿇어앉아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살을 태우는 폭발이 사방을 울렸다. 그녀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불꽃은 툴란에게 닿지 않았다. 놈의 벌레 떼가 그것을 막아냈듯이 이번에는 그녀의 글루번드가 주인의 위험을 알아차렸는지 발을 박차고 일어나 머리뼈로 물약을 받아낸 것이다.


"안 돼! 글루번드!"


툴란이 고함을 질러 경고했지만 강화제의 효과가 돌기 시작한 글루번드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대로 언다잉 무리 앞으로 뛰어들었다.

고기타는 냄새와 함께, 눈 한쪽이 완전히 함몰되어 안타까운 모습의 짐승은 주인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푸쉭!"


이 충직한 야수는 숨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강화제에서 나오는 믿을 수 없는 힘이 툴란을 대신해 언다잉을 밀쳐냈다. 그 기세에 망자들이 처음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미르, 하미르.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지친 툴란은 땀 때문에 흐릿한 눈을 끔뻑거리면서 앓는 소릴 내뱉었다. 앞줄의 상황이 어떤지 그녀로선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여기보다 상황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참을 수 없었다.


“툴란!”


짐마차에 기대어 겨우 몸을 일으킨 툴란은 간절히 바랐던 그 사람의 목소릴 듣고 반가움에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차마 목소릴 내뱉을 수 없었다. 목구멍에 끓는 가래 때문에.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번쩍이는 마스크 탓에.

그녀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마스크를 당장 벗어던지고 싶었다. 마침내 족쇄 같던 목뒤 버클이 풀리고 빛나는 황동 마스크가 바닥을 뒹굴었다.


“하미르!!”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땀에 젖어 미역같이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 반짝이는 흑진주를 닮은 구릿빛 이마가 드러났다. 짙은 눈썹과 커다란 암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중동, 스릿즈 대륙. 이방인의 것이었다.

툴란은 마차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전방에서 몸부림을 치는 글루번드 덕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간신히 서있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뭐야 저게?”


놀란 툴란은 입 밖으로 혼잣말을 했다.

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비탈진 언덕 위에 얼어붙은 낙엽을 밟으며 괴상한 행색의 그것이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뭐야? 사람인가?’


그것은 언덕 위에서 툴란과 언다잉들을 보고 망설이듯 서있더니 얼어붙은 비탈을 미끄러지듯 곧장 내려왔다.


“이리 오면 안 돼!”


넝마 같은 차림에 언다잉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앳되어 보이는 것이 분명히 사내아이였다. 그녀로서는 제 몸 지키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 소리 질러 경고했지만 들리지 않은 듯 했다.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채자마자 ‘젠장맞을.’ 이라고 머릿속에 욕지거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내아이에 신경을 쓰고 있을 수만 없었다.

그녀의 야수, 글루번드가 버티지 못하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뉘였기 때문이다.


“글루번드!”


글루번드는 고뿔이 잘리고 몸통이 도려진채 헐떡이고 있었다. 충직하고 덩치 큰 야수조차 망자들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무소의 두꺼운 가죽이라도 사정없이 찔러 들어오는 검을 막아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툴란은 팔의 경련을 정수로 억눌렀다. 쓰러진 글루번드를 짓밟으며 달려드는 망자들을 향해 그녀는 채찍을 휘둘렀다. 박살난 뼈가 하늘로 비산했으나 그 사이에서 이번엔 갑주를 철컹대며 해골병사가 뛰어 들어왔다.


‘하아…….’


생각뿐이었는지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 모를 깊은 한숨과 함께.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곧 그 여린 배는 망자의 검끝에 꿰뚫리고 말 것이었다. 도저히 그 검끝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 툴란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까마득히 혼미해진 정신과 밑바닥을 드러낸 체력에 온몸이 떨려오는 것만 느끼고 있을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빡!

어린아이가 투쉬딜의 시체를 밟고 뛰어오른 듯 했다. 심지어 열다섯도 안돼 보이는 소년이 무릎으로 언다잉의 머리를 박살낸 모습이었다. 그녀는 흩날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과 두개골이 함몰되어 무너지는 해골병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꼬마…….”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툴란이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언다잉들을 막아선 소년은 툴란을 향해 날선 고함을 질렀다.


“멀뚱히 서서 뭐해!”


그 말에 겨우 눈을 부릅뜬 툴란이 이를 악문 채 채찍을 휘둘렀다. 자신을 구한 소년에게 달려드는 해골을 박살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힘을 쥐어짠 공격이었다. 말라붙은 정수와 아픈 팔로는 도저히 더 휘두를 수 없었다.

망자의 팔과 몸통이 꺾이고 놈이 쥐고 있던 검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붕붕거리며 공중에서 회전하는 검날이 두려울 법도 한데.


소년은 겁도 없이 손을 뻗어 검을 낚아챘다.


검을 쥔 그는 성인이 한손으로 들법한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한손 검을 어린아이가 겨우 양손으로 쥐고 있는 꼴이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이어서 벌어지는 싸움은 모양새를 따지며 떠들만한 것이 아니었다.


손목을 풀 듯 가볍게 장검을 한 바퀴 돌려 잡은 그는 검끝을 팔꿈치에 올리는 특이한 자세를 하고 언다잉에게 덤벼들었다.


─ 빠득.


낯선 방해꾼에게 망자들은 뼈 튕기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망자들은 작고 볼품없는 소년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기세였지만 상황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망자들이 집어던지듯 휘두르는 검날을 힘으로 맞서 부딪쳤다.

무게를 실어 휘두른 검을 튕겨내자 망자들은 비틀댔고 소년은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얇은 검끝은 정확히 뼈의 관절을 끊어냈고 순식간에 망자들의 목과 팔이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방패를 들고 덤벼드는 해골병사들을 상대로는 어깨를 들이받았다. 제법 검술을 흉내 내는 해골병사들은 방패로 밀치려했지만 틈을 비집고 검이 찔러 들어왔다. 투구가 없는 놈들의 텅 빈 안공에 검이 박히자 순식간에 몸이 뒤로 무너져버렸다.

완전히 박살을 내놓는 것이 아니면 다시 몸을 일으켜 덤벼드는 뼈붙이들이 팔다리가 끊겨 바닥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계속됐다.


“어떻게 저런 어린애가!”


툴란은 좀처럼 심각한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경악했다. 움켜잡은 어깨는 여전히 경련중이라 움직일 수 없어도 눈만은 낯선 소년을 쫓을 수 있었다.


“문하생인가?”


그러나 그녀가 알기로 근처에 문하생을 양성할 검술학원 따위는 없었다. 보고 있는 검술 자체도 그녀로서는 너무나 생소한데다가 심지어, 그는 검으로 언다잉의 뼈와 살을 끊어내고 있었다.

검이 강철이라도 뼈를 부러트리는 과정과 검끼리 맞부딪치는 과정에서 검날이 상하고 부러지기 일쑤다.

무엇보다 언다잉의 육신은 불규칙한 마나가 가득하기 때문에 더욱 단단했다. 놈들의 팔다리를 무리 없이 잘라낸다는 뜻은 저 어린 소년이 정수를 다루고 있다는 뜻 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조심해!”


넋을 놓고 바라보던 툴란이 소년의 위험에 놀라 소리쳤다. 해골들 사이에 툴란의 야수를 힘으로 맞서 부딪쳤던 덩치 큰 망자가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꾸륵, 꾸륵!’


피거품을 뱉어내는 부어오른 시체가 덤벼들었다. 엄청난 힘의 우악스런 팔이 사내아이의 머릴 노리고 뻗쳐 들어왔다.


하지만 소년은 당황도 않고 바로 검을 독특히 고쳐 잡았다.


맨손으로 날선 검몸을 잡았다. 성인 손 다섯 뼘 정도 밖에 안 되는 검을 마치 창처럼 넓게 쥐고 있었던 것이다. 내려찍을 기세로 휘두르는 무지막지한 팔을 쉽게 밀쳐버렸다. 놈들의 굼뜬 손아귀가 다시 자신을 향해 뻗기 전에 그는 검끝으로 풍선처럼 부푼 복부를 찔러버렸다.

부푼 시체는 배에 뚫린 구멍 정도론 어림없단 듯이 버둥댔지만 툴란 눈에 그것은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허우적대는 손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다른 시체가 달려들자 그는 자루머리로 녀석의 턱을 후려갈겼다. 그리곤 검몸을 이번엔 양손으로 잡고 비틀대는 놈 머리를 크로스가드로 내려쳤다. 마치 망치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찍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머리로 이해 못할 대단한 무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사내아이가 할 수 있는 싸움의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에 툴란은 혼란스러웠다.


“툴란! 괜찮아?”


마차 움막을 뛰어넘어 한 사내가 나타났다. 툴란은 자신을 지금껏 애태우던 그를 보자 얼굴이 잔뜩 상기됐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참고 그를 끌어안았다.

둘은 매우 닮아있었다. 피부나 뚜렷한 이목구비 짙은 눈썹까지 중동의 스릿즈 대륙의 특징이 똑 닮았다.


“하미르, 앞에 상황은? 아니! 그것보다!”


앞에 상황을 물어보려던 그녀는 시급하단 듯이 하미르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저 애가 날 구했어! 빨리 도와줘!”


툴란의 말에 하미르는 바로 그의 곡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뛰어나가지 못하고 놀란 듯 멀뚱히 눈앞의 15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제기랄!”


어린아이는 어울리지도 않는 욕설을 꽥 내질렀다. 그는 힘을 다했는지 언다잉의 검을 힘겹게 피하면서 하미르를 흘겨봤다.

눈이 마주치자 사내아이의 표정은 더욱 사납게 일그러졌다.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달라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쳐내며 이름 모를 소년이 언성을 높이자 하미르는 그제야 언다잉들에게 달려들었다.


─ 구역질나는 놈들. 토악질 올라오는 놈들이 늘어났구나.


벌레가 들끓는 윙윙대는 소리.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추종자들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우두머리가 마침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 삶은 괴로운 것이다. 물러나라 짐승들아.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은 괴상한 짓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놈이 중얼대며 입을 벌릴 때마다. 입에서 그 기이한 빛을 품은 벌레무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 마침내……. 진흙받이 못에 통치자가 이 땅에 돌아왔으니. 내 시종과 하인, 병사들이여.


스스로 통치자라 부르는 귀신의 주변에 벌레 떼가 빙글거리며 회전했다. 놈은 굽이진 나무뿌리를 닮은 지팡이를 손에서 놓았고 벌레 떼에 휩싸여 지팡이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것이 마법 영창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막기엔 너무 늦은 것이 분명했다. 일렁이는 불빛이 한순간 커지더니 머리뼈에 구멍마다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영창이 마무리 되어가고 주변의 벌레 떼가 일제히 움직여 사방의 쓰러진 망자에게 날아갔다.


─ 일어나라……!


쓰러진 망자들이 벌레 떼에 뒤덮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멍 나고 부셔진 뼈에 벌레가 파고들었다. 무너진 형태를 벌레들이 다시 채우고 있었다. 망자들은 몸을 일으키며 부활을 반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흙받이 못의 통치자. 놈이 부리는 끔찍한 벌레 떼의 날개 소리가 사방으로 조금씩 퍼져나가고 망자들이 다시 땅위를 뒤덮을 준비가 끝나갈 때.


빠악!

맹렬한 속도로 날아간 검이 허공에 떠있는 지팡이에 적중했다. 


“네 마법이 끝나길 얌전히 기다려줄 거라 생각했어?”


빈정거리는 말은 소년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가 몸을 뒤로 넘어트리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집어 던진 것이다.


“멍청하기는!”


가쁜 숨을 헐떡이는 소년은 망자들의 우두머리를 조롱하며 예기치 못한 공격을 성공시킨 것을 크게 기뻐했다. 하미르는 뭐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부활한 망자들 사이에 대책 없이 쓰러지는 소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미르는 곧 그럴 필요 없음을 알게 됐다.


‘꾸르르르륵……!’


벌레 떼에 뒤덮여 다시 몸을 일으키던 망자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달려들던 망자들의 뼈는 다시 제각기 형태로 무너졌고 시체는 살점이 터져 흩뿌려졌다. 기분 나쁜 벌레 떼들 또한 빛을 잃고 끔찍한 소릴 내며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두 동강난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기류의 마나가 빛을 잃고 사그라지고 있었다.


“난, 더 이상 못해…….”


숨을 몰아쉬던 소년이 중얼댔다. 보고 있던 툴란이 뛰어와 소년의 상태를 살폈고 하미르는 이제 남은 마지막 한 놈을 노려보고 섰다.


─ 끄아아악!!


진흙받이 못의 통치자는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검에 온 정신이 팔린 검사란 놈이 들고 있던 검을 집어 던지는 판단이라니 있을 수 없었다. 병장기를 집어던지는 기사, 검사, 무술가 그 무엇이 됐든.

단 한 번도 본적 없었고 생각 할 수도 없는 짓거리였다.


─ 삶이란 괴로운 것이다 역겨운 것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판단을 벗어난 쓰레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발악을 하듯이 언다잉 무리의 우두머리는 같은 소릴 몇 번이고 질러대기 시작했다.

망자 무리의 우두머리가 바닥의 지팡이를 낚아채 잡곤 휘둘렀다. 하미르의 곡검이 녀석의 토막 난 지팡이와 부딪치고 불꽃이 튀었다.


 망자가 된 후 진흙받이 못의 통치자는 그의 몸이 용혈과 하나가 됐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만큼 엄청난 불규칙한 마나가 몸 안 가득 흘러넘쳤다. 검사들이 근접전의 달인이라 할지라도 패배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팡이 가득 마나를 불어넣자 검의 달인들이 사용할 법한 짙은 기류가 지팡이 전체에 휘여 감겨 넘실거렸다.


─ 순환을 멈출 순 없으리라!


악을 쓰며 휘두르는 지팡이는 연달아 불꽃을 일으키며 하미르의 검과 맞부딪쳤다. 진흙받이 못의 통치자의 눈동자가 초록불빛으로 점점 더 크게 일렁거렸다.


그러나 연달아 휘두른 지팡이가 검에 막힐 때 마다.

그 몸부림을 막아낸 상대의 눈을 마주보게 될 때마다.

그 뜨겁게 일렁이던 눈빛은 힘을 잃어갔다.


하미르는 순식간에 자신을 통치자라고 떠들던 어리석은 언다잉의 갈라진 지팡이를 다시금 반 토막 냈다. 푸른 기류에 휩싸여 불길하게 일렁이던 지팡이가 번갯불을 일으키면서 동강났다. 그와 함께 놈의 팔 또한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놈의 두개골속 안공에 불빛이 믿을 수 없단 듯이 흔들렸다.

녀석은 자신이 본 것을 여전히 믿을 수 없는지 남은 팔을 있는 힘껏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그 뿐 이었다.


하미르의 곡검이 쇳소리와 함께 사슴뿔 왕관을 쪼개고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놈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1 Comments
02.14 00:50
동양인인줄 알았는데 독일검술을 쓰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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